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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CHELIN GUIDE JEJU 
 Vol. 7 
 HAGWI1
 양공택 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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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이주민들하고 또 역사적인 부분하고 아주 어우러졌어 여기가. 하귀1리라는 마을이.

크게 홍보할 수 있는 부분은 고려말기에 삼별초 군들이 넘어 온거야 이쪽으로. 여기가 군항포라고 있는데 삼별초에 대한 관문이기도 합니다. 파군봉이라는 오름도 있는데 거기서는 군인을 파했다 해가지고 파군봉. 그런 역사적인 부분도 있고. 4.3에 대해서도 아주 유서가 깊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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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표적인게 4.3 영모원. 저 위에 가보면 우리 여기 한 3백명이 해가지고 다 모셔져 있는데 하귀1리 2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어 지원도 안받고 십시일반 해가지고 공원화 만든거에요. 죽은자는 말이 없지만 산자는 화합해라 하는 중요한 말이 있어요. 죽인자, 피해자, 가해자의 합친 곳이 영모원이에요. 화해의 상징인 곳이다 저기는. 그만큼 영모원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이번에 대통령이 왔다갔고.

또 해안 바다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보니까 어촌계가 상당히 활성화가 된 곳이에요 여기가. 그전에 어촌계에서 먹다시피할 정도로 바다 하고는 상당히 연관되어 있는 마을이고. 지금 남아있는 토지가 40% 남아있는데 집 지을 수 있는 토지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어요. 앞으로 계속 인구수는 불어 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해안하고 원주민하고 이주민하고 역사하고 아주 골고루 분포되어 현재 미래 과거 아주 공존된 마을이 하귀1리라고 대표적으로 자랑하고 싶어요. 그 부분이 나는 여기서 계속 자라고 지금까지 와서 본 그게 가장 주안점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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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으로 판단했을 경우에는 왜 이렇게 인구수가 불었냐고 하면 그 이유가 있어 여기가 도시계획할 당시만 하더라도 하귀1리가 애월읍의 첫 관문이에요. 그래서 북군 도시계획 해가지고 마을 크게 형성 해서 아시다시피 하귀일초등학교 이런 부분이 들어오다 보니까 인구수가 팍 늘어나버렸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버렸어. 애월읍 같은 경우가 3만 7천명인데 여기가 7천명 차지하는 거야 한 마을에서만. 어쩌면 면 같은 정도로 마을이 늘어난 곳이 하귀1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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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귀일초등학교가 설립할 당시만 하더라도 교육청에서 상당히 되겠냐 할 정도로 의심스럽게 설립이 됐었지. 개교한지 8년째 됐는데 저게 3백명 정도 우리가 예상을 했었는데 6백명이야. 그래서 저 초등학생 6백명 인원이 우리 제주시 관할에 제일 많은 곳이야. 저도 놀랐습니다. 설마 했는데 우리 그 휴먼시아 아파트에 700세대가 있는데 거기가 대부분을 차지해요. 학생수가 지금 현재 6백명인데 저도 몰랐어요 솔직히 예상을 못했지.

 

기대이상 불어나버려서 증축하고 있어. 교육청에서 6학급 증축을 하고 있는데 교실이 없어 가지고 애들 공부할 데가 없어. 교무실도 다 차지할 정도로 하다 보니까 그 정도로 여기가 애들 저기 초등학교 다니는 우리 어린이들 부분하고 이렇게 타마을에 비해 엄청 많다. 젊은 사람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까. 젊은 분들이 많으니까 학생들도 불어난 거에요. 근데 이제 저는 우리가 어린이들을 방과후에 수용할 곳이 없다 보니까 가장 관건이에요 저기가. 갈 곳이 없어 그래서 우리 옛 농촌지도소에 건물을 발취해가지고 우리가 리모델링 사업을 내년에 할 계획입니다. 동아리를 한다던가 부녀회를 한다던가 애들 와서 공부도 하고 복합적인 공간 만들라고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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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있는 마을에 도시계획하면서 이주민들이 그냥 그래서 7천명이 된거에요. 저는 토박이 이고 이런 부분들이 신생마을이다 보니까 옛고을에 대한 맛은 없어졌어요. 새로 신축하다 보니까 그런 부분들은 아쉬움이 많이 남지.

여기가예 하귀 1리 마을이 다른 동네하고 틀려가지고 여기는 논이 형성된 곳이야 논. 쌀 논농사 위주로. 여기에 장수영과 육서굴이 있어. 장수가 많이 왔다고 해가지고 장수영이에요. 쥐가 6마리가 살았던 굴이라 해가지고 육서굴입니다. 거기가 다 논밭이에요 논밭. 하귀1리가 다른 마을에 비해가지고 논밭이 많았기 때문에 상당히 다 비옥하게 살았어요 상당히 그전 조상들이 논밭으로 형성된 마을이라서.

 

이런 곳들이 제주시하고 가깝다 보니까 유지도 생기고 나이 드신 분도 계속 남아있는 형편이라 다른 마을하고 달라가지고 상당히 빨랐어요 이주 부분이. 나는 여기서 농사짓고 부모 따라 계속 여기 살았지만. 이주가 빠르게 이루어지다 보니까 여기가 상당히 영특해요 사람들이 빨라. 그러다보니까 이제 교육열도 강하고.  그런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탁월해가지고 상당히 빠른거 같애. 앞서간다고 해야하나.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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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때 같은 경우에는 서당을 많이 만들어서 교육할만큼 우리 하귀1리가 교육열이 대단히 강한 집안이다 동네다. 또 우리가 여기 논농사 위주로 밭농사 논농사의 복합적 동네다. 벼를 재배했었고 지금은 논농사 부 폐소시키고 도시민들이 이주화 열풍 불어가지고 전부 도시화 되가지고 여긴 도시화 되버렸어요. 하귀1리는 농촌마을이 아니야 어찌보면. 그러한 아주 유서도 깊고 아주 교육열도 강하고 또 애향심도 강한 그런 아주 그냥 다목적으로 할 수 있는 고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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