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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CHELIN GUIDE JEJU 
 Vol. 1 
 SONGDANG 
 홍용기 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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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부터 군대생활 5년 빼놓고는 여기서 살았어. 제주도 떠나 본 적이 없어 63년 동안. 이 동네는 식당이 오래된 대대로 내려오는 식당은 없어요. 우리 마을 자체가 제주도 중산간 마을은 ‘중간산 소개령’이라고 해서 사건 동안에는 마을 자체가 없었어요. 4ㆍ3 끝나고 사람들이 올라오면서 형성된 게 송당 마을이라 해봤자 70년 밖에 안됐어요. 역사가 그 전 역사로 이어지지 않으니. 먹을 게 굉장히 귀했어. 기존 터전을 다 잃고 해변 내려가서 남의 집 더부살이 하는 게 얼마나 서러움을 받고 얼마나 힘들게 생활을 했겠어? 올라왔는데 허허벌판에 나무도 없고, 움막짓고 얼기설기 지어 살아온 게 송당 역사란 말이야.

 

우리 주변엔 50년 넘은 나무도 없다. 100년 된 비자림이 어디있나. 집짓고 먹을 것이 없으니 땔감 하느라 마을 주변에 나무가 남아있지 않지. 정자목 같이 퐁낭이 몇개 있는데 그걸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보호수/신성시 여기는 몇 그루 말고는 없다. 그러다 보니 자녀 교육을 못시키고 하루 3끼는 고사하고.. 식당장사라는 개념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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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 4ㆍ3 사건으로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지, 사람이 많이 죽거나 하지는 않고 다른 중간산 마을에 비하면 덜 죽었지만. 우리 나이만 해도 송당초등학교 졸업하면 해변에 가서 자취를 했거든, 밥해먹고 살기 바쁜데 공부가 제대로 되겠어? 부모도 먹고 살기 바쁘기 농사짓고. 13살부터 알아서 컸지. 어렵게 살았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평대-송당, 세화-송당 간에 비자림로가 있지만 포장이 안되어 있었고 (81년도에 포장), 신작로라고 해서 보수를 몇번씩 해야 됐었거든. 그렇게 우리끼리만 살때는 어렵게 살았어 교통도 불편하고.

도리송당이라는 말을 쓰는데. 도레리 같은 송당이라는 말이라 그만큼 산골이라는 말이야. 2010년도 정도 되니까 교통이 틔이고 자연히 보존이 다른 마을보다 되어서 - 다른 말로는 역으로 생각하면 개발이 안되었다는 말이라 누가 와서 건들지 않았단 말이야 - 여기있는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해서 보존한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못살아서 투자할 것이 없고 개발 할 능력이 없으니 자연히 둔 게... 전화위복이랄까 좀 그렇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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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관광객 많이 오는 걸 환영을 하거든, 우리가 불편하고 우리 정서에 안 맞는 일이 발생을 하니까 생각이 틀려지는 경운데... 인프라기반시설이 안되어 있는데 사람이 몰리니까 불편한거라. 요번에도 농로에 풀베기를 싹 했어.

 

우린 본향당이 있어서, 손님들도 오시면 점심대접도 하고 우리도 한단 말이야. 원주민들을 약간만 배려할 수 있는 것만 된다면 좋단 말이야. 우리가 관광객에게 이득을 얻자는 게 아니고. 지내다 보면 친해질 수도 친구도 될 수도 있고 이웃이 될 수도있고. 사람 사는 게 그렇단 말이야. 정착하는 것도 그렇단 말이야. 정착민 중에 광고에 종사하신 분이 계셔가지고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데, 본인 재능이 있으면 마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거고 우리도 사람 아니게 받으면 가는 것도 있고 도움을 줄 수도 있는 거고.. 활성화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경로당이 있어서 이주한 어르신들은 자주 오셔요. 근데 젊은이 들은 그게 어려워. 여기 사람들은 배우지도 못하고 공부도 못했고 어렵게 살았었고 지금도 물론 어렵지만, 생활 수준이 여기 사람이 외부 사람들 보다 낮아, 여기 온 이주민들은 도시 생활을 했고 직장생활을 했고 모아 놓은 돈이 있고, 우리보다는 상위라고 하기 그렇지만 여유있는 생활을 했다고 보거든. 여기는 안쓰고 안먹고 살아온 세대고. 오시는 분들은 어떤 연유로 왔던 아이들 학교 때문이든 귀촌을 해든, 지식도 갖고 견문도 크게 볼 수 잇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느끼거든. 마을이랑 같이 해준다고 하면 나는 융화되면 좋다고 생각하거든. 원인이 뭔지 알기 위해서 워크숍도 하고 만나서 소주도 한잔하고... 근데 사람들이 소주마시면 다 통해 다 오케이야. 근데 끝나면 다 땡이야. 그래도 어렵더라도 열번을 시도하고 한번이라도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거든 시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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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같은 경우는 내 입장에서는 여기 찾아오시는 분들을 언제든지 환영하고, 오면은 안내해드리고 설명해드릴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놓고 싶단 말이야. 본향당 해설을 원하시면 지원해드린단 말이야. 단체가 미리 연락해오시면 설명해드린단 말이야. 오름탐방센터도 마찬가지야 오름해설사가 배치되서 하겠지마는 따라가면서 해줄수는 없지마는 마을에서 안내하고 설명해드릴 수는 있거든. 찾아오는 건 굉장히 환영을 하고. 그분들이 와서 스치고만 지나가는 마을이 아닌 기회도 좀 많고 느낄 수 있는 것만 되어주면 좋겠고, 우리 입장을 약간만 조금만 이해 해주면 어떻겠나. 사람사는 데 사람 찾아오는 걸 싫어 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거든게. 찾아오시는 분도 약간만 양보하고 우리 주민들도 약간 양보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우리가 하고 이렇게 살아가는게 윈윈하는 게 아니겠느냐.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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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라던가 산책로 정비라던가 이런 부분은 행정의 협조를 받지마는 나도 적극적으로 해왔고, 그런부분에는 더욱더 힘써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래도 송당 가니까 그래도 좀 뭔가 해놨더라 뭔가 괜찮더라”하는 말을 듣고 싶은게 솔직한 마음이에요. 정착주민도 있고 기왕 사시는 거 이분들도 오시면 송당본향당 마불림제 라던가 와서 같이 마시고 먹고 돈내라는 거 아니니까 먹고 어울리고, 우리 바쁘면 일도해주고, 그네들 바쁘면 우리가 지원도 해주고, 특히 농촌에 살면서 그게 삶이 아닐까 생각해요. 뭐든 이익 손해 이런 것을 떠나서, 내가 약간만 손해보고 약간만 양보하면, 살아가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되고 좀 즐겁지 않을까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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