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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CHELIN GUIDE JEJU 
 Vol. 6 
 WOLLYEONG
 강한철 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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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림읍 월령리 이장을 맡고 있는 강한철입니다. 이제 이장을 시작한지는 올해 5년차 됐구예, 젊기는 젊은데 나름 열심히 한다고 생각허구. 우리 동네는 마을이 작다 보니까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예. 하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젊은 나이에 이장을 하게 됐는데 그래도 뭐 특별한 다른게 있는거 아니구. 여력이 되니까 여유 있는 사람 먼저 하다 보니까 제 차례까지 왔습니다. 

 

저는 고향이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나가지고 군대간 거 빼고 2년 정도 빼고는 여기서만 살았습니다. 토박이마씸. 여기는 강씨가 많이 있어마씸. 여기는 이치비가 제일 많고예. 강치비, 박치비, 그런 식으로..

이치비가 많아마씸. 치비는 보통 그런 식으로 많이 말해마씸. 강치비 궨당들, 이치비 궨당들 그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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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은 특별히 자랑할 것 보다는 선인장. 이제 군락지라고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선인장 군락지가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조류로 선인장 씨앗이 떨어져 와 가지고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자생한 곳인데 그 곳하고. 선인장 군락지는 우리마을 자체에서 예전에는 선인장을 재배하고 수입을 많이 올렸었는데 지금은 선인장 판로가 마땅치가 않아서 많이 페원하는 상태고예. 예전에는 한 이십 년 전만해도 고소득 작물이었습니다 그 선인장이. 

 

열매가 백년초가 아니고 선인장 자체가 백년초라고 해요. 마을분들은 일반 농사는 안 하더라도 선인장은 다 재배하고 했었거든예. 여튼 가격도 괜찮았고. 그때는 마을 차원에서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운영을 했었고 근데 지금은 그게 다 없어져버리고 선인장도 너무 많이 생산하다 보니까 판로도 힘들고 점점 이제 없어지는 상태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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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판매는 지금은 다 개인적으로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마을에서 이제 조합을 만들어 가지고 마을에서 다 한 번에 수거해가지고 다 넘기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조합이 없어져 가지고 개인적으로 다 팔고. 

옛날에는 거의 주수입원이 거의 다 선인장 팔아서 했던 건데 지금은 수입의 한 1, 20프로밖에 하지 못하니까 예전에는 거의 80프로 이상까지 주수입원이 선인장 판매였습니다. 지금은 거의 못 파는 수준입니다. 지금은 생산량의 거의 한 3, 40%만 소비되는 상황이죠. 소비 자체가 줄어든 거에요. 처음에는 방송에도 나오고 몸에도 좋다고 하니까 엄청 소비 많았었는데 지금은 소비가, 생산량이 늘었다고 보기에는 늘기도 했지만 는 거는 크게 맞지 않고 소비자체가 줄어든 거 같아요. 마을 내에도 선인장에서 백년초 국수를 했었는데 그게 이제 썩 반응이 좋지 않다 보니까 없어졌죠.

 

판로가 개척되면 좋겠죠. 지금도 밭에 심어가지고 놔둔 곳이 엄청 많아마심. 수확을 안하고 지금도 선인장 심어가지고 버려지고 있는 게 엄청 많은데 판로가 있거나 하면은 수확은 하죠. 수확해도 인건비가 안나오니까 수확을 못하는 거죠. 지금도 버려지는 게 뭐 한 40%이상 버려지고 있을 거에요 아마. 다른 농사는 힘들다 보니까 이것저것 안하고 폐원상태로 사용 안하는 땅들이 꽤 많아마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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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천 할머니 삶터, 4.3때 총상으로 상처를 입어 가지고 한 평생 힘들게 사셨던 할머니 삶터가 있는 곳이구예.  무명천 할머니 삶터는 어린이 학생들 교육장으로도 많이 오고 이제 9월 8일이 할머니 제사인데, 그때 되면은 무명천 할머니 삶터 보존회라고 있더라고예. 거기서 와서 제사도 지내고 추모제도 하고.

저희 어릴 때 제가 한 스무살 때 까지는 살아 계셨죠. 우리 어릴 때는 많이 봤어요. 할 게 없으니까 그 할머니 같은 경우는 여름날 같은 때는 나무 그늘에 앉아서 혼자 쉬고, 이제 턱 때문에 말을 잘 못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기가 힘드니까 다른 사람들하고 말을 잘 안하고 혼자 외로이 그냥 사셨죠. 우리도 어릴때는 그게 왜 그 상처를 입으신지 몰라가지고 모래기할망 모래기할망 그렇게 했었는데. 어릴 때는 그 4.3때문에 그렇게 상처를 입으신지 몰랐어요. 어른들은 아셨겠지만은 그게 어린 아이들한테까지 다 교육이 된 게 아니고 말해준 게 아니고 그냥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걸로 알고 있었지. 나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하니까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막 도움을 받지 못했어요. 돌아가시고 난 후에 이제 4.3사건이 이슈화 되면서 그렇게 뭐 좀 했지.

제가 평상시에도 막 아쉬웠던 게 살아 계실 때는 이제 도움을 받지 못하다가 죽으니까 이제 좀 도움 아닌 도움을 받는거 같아 가지고 그게 좀 아쉽죠. 살아계실 때 그 도움을 받았으면은 좋았을 텐데. 살아 계실 때는 진짜 혼자 힘들게 사셨단마씸. 어디 다른데 가서 뭐 식사를 같이 못하니까 다른 사람들하고 혼자만. 옆집에 가서 놀러가도 특별하게 다른 사람들하고 말 못하고 그냥 앉아만 있다 오고 뭐 옆집에 가서 다른 사람들 모여 주위분들 오면 식사도 같이하고 하는데 진아영 할머니는 식사도 같이 못하고 하니까 혼자만 먹어요. 집에서 남들한테는 보여주지를 못하니까 먹는 모습을. 그런게 좀. 제 기억에도 아주 불쌍하게 사셨던 할머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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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 개인적으로 특별한 곳은 월령리 바닷가에 보면 조록코지라고 있어요. 바닷가에 이제 용암이 쭉 뻗어 나간 코지 같이 쭉 뻗어 나간 곳인데 혼자 쓸쓸할 때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 혼자 저녁에 바닷가 코지에 나가면은 아주 좋아요. 혼자 생각하기도 좋고, 바다 파도소리도 좋고 해서 어디 가서 혼자 생각할 게 있을 때는 그곳에 가서 생각도 하고 추억에 잠기고 하죠.

힐링의 장소죠. 낚시꾼들도 많이 오고. 낚시는 지역 분들은 잘 안 하는데 명소로 알려졌죠 조록코지가. 다른 곳에서 많이 왔죠 낚시하레. 여기 사람들은 이제 낚시보다는 직접 물에 들어가서 잡으니까 낚시는 답답해서 많이 안 해요 저 역시도.  고기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곳에 낚시대를 놓고 기다리는게 지루해서. 직접 들어가서 해요. 수경 끼고. 예전에는 작살 들고 들어 가서 직접 잡고 했는데 요즘에는 그게 불법이다 보니까 못하는데, 한 5년전까지만 해도 저는 매일 했어요 여름에는. 운동 삼아서 할 정도로 무릎 안좋아가지고 무릎 때문에라도 수영이 무릎에 좋다고 하니까 수영 대신에 작살 들고 가서 많이 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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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분들 지금 한 45-50명 가까이 되요. 그런데 거기서 한 60% 이상은 못하죠 물질을. 나이 드셔가지고. 지금 거의 다 나이드신 분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제 계속 줄어 들거죠. 해녀분들도. 저희 마을도 인구의 거의 70프로가 다 노인이에요.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어 가지고. 있어도 뭐 청년층은 1, 20프로 되는데 실질적으로 일하다 보니까 마을에 신경쓰기는 힘들고 거의 뭐 노인분들 위주로 마을이 운영된다고 보면 되요. 월령리에서 최고령인 분은 지금 한 구십둘 됐신가.

저는 젊은 사람들 오는 거 아주 환영해요 좋죠. 그런데 이제 개인사정으로 인해서 못오는 분도 많고하니까 저는 개인적으로는 막 권합니다. 와서 뭐 펜션도 하고 하라고. 동네도 이제 올레길도 있고 하니까.  저는 개인적으로는 잘 놀아요 이주민들하고도. 육지에서 젊은 분들이 그냥 놀러 오거든예. 일년 살다 가고, 이년 살다 가고, 와 봐서 마음에 들면 더 살고, 이제 휴식 힐링하러 온다고 하죠. 직업이 있는게 아니고 육지서 일하다 지치니까 여기 와서 사글세 빌려 일년 살다가 와서 푹 쉬고 가드라고. 놀다가. 하고싶은 거 하면서 그런 사람들 이제 저는 자주 만나거든요 개인적으로. 저녁에 이제 소주도 한잔 같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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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수익사업을 할려면은 농사보다는 관광쪽으로 가는게 이 시대에 좀 맞을거 같은데 저희 마을에는 큰 땅이 없다보니까 젊은 사람들이 농사 하기에는 힘들어요. 요즘에는 농사도 대농으로 해야 되는데 작게 해가지고는 되지가 않을거 같고 젊은 사람 들어 오면은 농사보다는 관광산업 쪽으로 가는게 먹고 사는데 좀 편할거 같긴 하네요.

 

제 생각에는 어차피 할 수 있는게 뭐 바다라든가 우리 마을이 갖고 있는 특별한 그런걸 이용해가지고 할 수 있는거 밖에 없는거 같아요. 우리 마을 자원이 아닌 이상 다른 마을에서도 할 수 있는건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 진짜 우리 마을에 와야지만이 할 수 있는거 바다 낚시라든가, 뭐 선인장 같은거 다른데도 심어버리니까 그렇고, 뭐 마을에 있는 동굴탐험이라든가. 마을에 동굴이 있어요. 한들굴이라고.  그런 걸로 이용해서 체험활동을 하면 좋지요. 용암동굴이에요. 지금은 방문객은 거의 없어요. 개방이 아직 안됐을 걸요. 개방 안해도 한 두명 탐험하는 거는 우린 어릴 때 매일 놀러 갔었거든요. 근데 이제 지금은 나이도 먹고 안가다 보니까. 제가 볼때는 한 두명 가가지고 체험하기는 딱. 개방했다 안했다 그렇게 하기는 힘들구예. 한 이십년 안됐을 걸요 탐사대 와서 뭐 한 지가. 그 전에는 그냥 버려져 있던 동굴 그런 식으로 되 있던 거라서 누구 가고싶으면 가고 가면 된다 안된다 개방한다 안한다 지금은 가니까 잘 모르겠어요. 동굴이나 바다를 이용한 거는 관광객들이 여기서 아니면 할 수 없는 거니까. 

 

월령 자원을 이용한 걸로 하고 싶어요. 그렇게 해야지만이 관광객들이 올 수 있으니까. 

선인장 피자 만들기. 몇 개는 계속 하고 있었어요. 근데 이제 그게 해도 너무 소규모로 하다 보니까 강사비가 안 나오고 하니까 차츰차츰 뭐 한거지. 선인장청 만들기 그런 거는 하고 있었어요. 부녀회에서. 요즘에는 예약 안 받았어요. 코로나도 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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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는 돌담이 많아요. 선인장이 있고 하니까, 그러다 보니까 길을 걸었을 때 특색이 강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잣담 같은 것도 많고. 돌이 많은 동네라서. 우리 동네 예전에는 길들이 잣담길이라고 해서, 담이 경계담이 넓어 한 2미터쯤 되요. 그러면 사람들이 그 위로 걸어 다녔어요. 잣담길이 엄청 많은 동네라고. 지금도 많이 남아있어요. 그런데 그 위에 선인장을 심어버리니까 왔다갔다 못하는 거지. 예전에는 일반 길 말고 잣담을 이용하면 금방 갈 수 있었거든요 지름길 식으로. 저희도 다녔어요 어릴때는 잣담길로. 길로 가면 맨 돌아가는데 잣담길로 가면 금방 가니까. 그런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어요. 

 

근데 이런게 이거는 사유지 거든요. 개인이 와 가지고 그 땅을 사서 그런건 허물어 버리겠다고 하면은 막지를 못해. 마을이 지켜 지면 좋죠. 바닷가에 있다가 지나가는 올레꾼들하고 얘길 하다보면은 일년에 한번씩 제주 월령이라는 곳을 오는데 5년 전만해도 마을이 상당히 이뻤다고 아담하고. 진짜 여기 오면은 다 도시적인 건물이 없고 다 농촌건물만 있어가지고 진짜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고 하는데 이제 그런 맛이 없어졌대요. 올레꾼들이 좀 아쉬운게 그거라고. 근데 그런 거는 뭐 개인 거를 뭐 마을에서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지역분들은 거의 없는데 외지에서 들어와서 영업할려면은 고급스럽게 짓고 해야 되니까 이렇게 뭐 건물 짓는 것까지 뭐라 하지 못해요. 그나마 뭐 이주민들도 와서 장사하면서 뭐 그렇게 뭐 마을에서 도민차원에서 도와주고 특별하게 모나지 않게 잘 협력하는 편이에요. 여기 오신 분들은 월령에 오신 분들은.

 

월령은 마을도 자연도 뒤쳐졌다기 보다는 옛모습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저희가 갖고 갈 수 있는건 갖고 갔으면 좋겠는데 제 생각에는. 개인 사유지 같은 거는 개인재산은 이래라 저래라 못하니까 아쉬운 부분들이 있죠. 보존할 수 있는 거는 보존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개인 생각으로는 또 본인 생각은 틀리겠죠. 거기다가 뭘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겠고, 그 자연을 계속 가꾸어 나가면서 그걸 이용해서 뭐 할 수도 있는 건데 주인 마음이고.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거라서 이제 잣담 같은거나 그런 거는 지켜졌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아마 잣담길 투어 같은 건 없을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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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의미라기 보다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어서 애정이 많죠. 어차피 마을 어르신들이나 친척들도 다 여기 있고. 그런게 있잖아요 우리 이장님들 보면은 자기 마을에 대한 애정이라든가 애착이 있으셔가지고 자기 마을을 한번 잘 살려 보겠다 하는 이장님들도 많고 저 역시도 다른 마을은 잘 되는데 우리 마을만 잘 안되면 그것도 수치스러운 거니까 나름 열심히 할려고 노력은 하고 다른 마을이 하는 만큼 저희도 그거에 따라서 맞춰 가야죠. 어른신들이 많은 동네라서 어르신들이 편안히 살게끔 복지쪽이라든가 그런 걸로 위주로 해가지고 오히려 농사쪽 만이 아닌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살 수 있도록 그런 마을을 만들고 싶은 거죠. 

월령은 제가 볼 때는 관광산업쪽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 아닌가 생각해마씸.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지만은 그나마 찾아오는 손님들이 다 좋아하고 하니까 그런 것을 살려가지고 수입에 연관을 시켜가지고 관광산업쪽으로 발전을 시키면은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그런 지역인 거 같아 마씸.

© 2020 Rechelin Guide Jeju

기획운영 : 제주폐가살리기 사회적협동조합  |  지원 : LH 한국토지주택공사 제주지역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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