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HELIN GUIDE JEJU 
 Vol. 3 
 GIMNYENG 
 강정윤 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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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김녕 마을 책임을 맡고 있는 이장 강정윤입니다. 나는 다른 데는 어디 가본 적이 어서. 우리 조상도 여기 살았고 하난 허허. 내 아이들은 안그럴 거 같아. 지금 다 서울사니까. 나중일은 모르지만. 아버지 고향이니까. 나이 들면 고향 생각나고.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씩 일조하고 나 부족한건 나와 같은 관심을 가진 다음 사람이 와서 좀 보태고 하는 거죠. 

문화라는 건 일시에 확 이건 아니거든 예. 점진적으로 바뀌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기대를 좀 하고. 그러니까 이런 걸 이어가기가 쉽지가 않지요. 생각을 공유해야되잖아요. 이야 저거 한번 해야되네 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몇 사람 이서야 나혼자 아무리 좋은생각 가져야 아이 그거 관심도 없고 그걸 뭐하러 하는데 하면 참 어렵죠. 요새 마을이 고령화 돼서 사회적인 상황이 인프라가 없어요. 쓸만한 사람은 다 도시로 가고. 우리가 원래 사람은 귀향 본능이 좀 있잖아요. 그러나 일단은 그런데 뜻을 두고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면 뭔가 좀 변화가 오지 않겠나 하는 자그마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뭔가 협력해서 문화를 만들어 가는 걸 시연하면서 보여주기도 하고 그래야 되는데 이런 저런 한계도 있고 재생적인게 뒷받침 되어야하는 부분들도 있고. 뭐 여러 가지로 어려움들이 있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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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제 사람이 누구나 다 자기 태어난 곳 그리고 저하고 또 세대적 차이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부모가 살았고 그위에 있는 그위에있는 또 조상이 또 살았고 오늘의 나가 있다는 이전제가 있기 때문에 또다른 남다른 고향에 대한 애정? 애향심? 좀 더더욱 남다른 것은 아닐까 싶어요. 그런 부분은 사람들마다 차이도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조상이 태어났고 여기서 생을 마감했고. 부모도 생을 마감했고 나도 여기서 생을 마감할 곳. 그러면 또다른 의미가 부여되겠죠. 

그래서 내가 내가 죽어서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면 이름을 어떻게 남길 것이냐에 의미가 있죠. 아, 강정윤이라는 사람 좋은 사람.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남아야되겠다가 내가 마지막으로 이뤄야되겠다는 꿈. 그 꿈을 지금 이루는 과정이죠. 하나하나도 거기에 초점을 맞추니까 소홀히할 수 없고. 투명하고 말그대로 올곧게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인식으로 일을하고 있죠. 그러니까 자연히 신뢰는 거저 갖다주는 게 아니라. 쌓여가는 거죠. 하는 일은 다 좋아. 해야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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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장을 한지가 2018년 8월부터. 아직 2년이 채 안됐지 예. 이제 거의 곧 2년인디. 원래 여기 임기가 3년이에요. 나는 이장이런 일 할 생각이 없었어요. 내가 할려고 한게 아니고 할 수 어시 이자리에 사람들의 강요에 의해서 왔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선거해서 왔지만. 그런데 이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부탁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그거를 저버릴 수 없고 내가 또 했던 일들이 이 공동체를 위해서 해왔던 일들이고 마지막 봉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지금 일을 하고 있는데. 그때의 마음이 하나도 변하지않고 초지일관으로 하고있기 때문에 엄청난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안정화 되니까 마을이 지금은 평온하게 가고있죠.

앞서 말했죠 나름대로의 그 경험 생각 사명감 일욕심 이런거 다 복합해서 짧은 시간 안에 본을 보이고 다음 사람을 위해서 가는 거죠. 하라 하라 한번 더하라하면 욕심나죠. 왜 사람의 마음이란 옆에서 아유 잘햄쪄 한번 더 해야 돼켜 하면 누구나 다 한번 더 할까 이렇게 되는 게 사람입니다. 근데 나는 아쉬울 때 떠나고 잘할 때 떠나는 것이라 생각해요. 잘햄덴행 더 잘해캔행 남아있으면 결과는 절대 좋지 않습니다. 인간이 그렇잖아요. 끊임없이 변화하는게 사람이어서 그렇다는 거예요.

나 다음사람이 이어서. 내가 생각했던 것도 힘들을 보태서 만들고 연결되어가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성공한 문화지요. 그렇다고보면 본인이 청렴해야 돼. 이런것들이 다 실행되려면 가장 핵심이 돈이 있잖아요그래서 나는 투명하고 청렴한 책임자여야 되는 거. 그건 본인 스스로가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것이지. 어쨋든 나는  출발한 사람이 다음사람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서 나는 남은 임기를 마치겠다라고 선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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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설촌의 역사 중에 마을이 한마을이 둘로 나뉘어졌던 때가 있었어요. 햇수로 아마 1841년에 국가의 행정구역 변경 계획에 따라서 구좌면이니 신좌면이니 하면서 행정구역이 동김령리, 서김녕리 나뉘어서 약 1세기가 흐른거라.

동김녕 서김녕 하면서 반으로 나눠서 생활을 하는데 사회구조가 점점 변화하고 인구가 늘면서 여러 가지 이해 충돌이 막 생기는 거라. 그때는 무슨 땅의 가치 보다는 이용의 측면에서 많이 생각했지. 요새는 따지면 그게 다 돈 아닙니까.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경계라는 게 어마어마한 이해충돌을 가져오는 거예요. 저는 어릴 때부터 마을 어른들이 그런 갈등과 대립하는 것을 보면서 이해가 안갔어요. 왜 이럴까. 뭐 길에 줄 긋어 놓고 싸우는거라. 그런 것들이 어릴때부터 각인이 되었는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아, 이거 앞으로 큰문제가 되겠구나, 앞으로 우리에게 큰 시련을 가져다주겠다 싶었죠. 궁극적으로 공동체, 관계가 무너진다는 것이 눈에 딱 보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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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버이 세대를 생각해보면 지금은 웃음이 나오는데 그때는 막 편들어서. 나도 동쪽인데 우리 어머니 편들고 누나가 서쪽에 시집갔다 그러면 적이라. 이젠 누나가 아니고 적. 안된다. 겅행 옛날에는 미역, 또 천초 알아요? 우뭇가사리. 시골에는 바다에 가면 이게 큰 자원이라. 그게 우리 어린시절에는 이걸 캐서 오면 농사짓는것보다 많은 돈이되니까 지역사회의 분쟁이 생기는 거라. 바다도 있잖아 바다 선그어가지고 못 넘어가게 하는거라. 뭐 이런 반목과 대립이 반백년 동안 끊임없이 지속된 거죠. 이 상황을 마을 사람들이 다 느꼈을 거 아니. 그런데 이것은 오래 고착되었던 일이어서 하려면 걸림돌이 많아가지고 한발자국도 못나가고있다가 1998년도에 양쪽에 통합추진 위원회를 결성해서. 

제가 그때 보면 한 2년 동안 이일을 해서 행정구역이 결국 통합이 됐어요. 마을 사람들 양쪽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2년동안 작업을 했어요. 이게 근데 간단하게 되지가 않았어요. 그전에는 그 마을 지번도 다 달랐어요. 동김녕리 몇 번지 서김녕리 몇 번지 하면서 완전히 달랐어요. 우선 행정 자체를 다 바꿔야돼. 법에 따른 토지 대장 이런 지적상의 정보가 전부 바뀌어야하는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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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결국  2000년 1월 1일자로 동서김녕리가 행정 통합을 했지요.2000년 1월 1일을 디데이로 하고 2년 전부터 작업을 했으니까. 그래서 거기에 또 제가 일원으로 참여를 했죠. 우리가 관심을 가지면 깊이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그중에 문제가 무언지 알아야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해보잖아요. 저는 그런 차원에서 이일이 저에게 주어진 개인적인 소명이라는 생각이들었어요. 그때 제가 어렸지만은 여기저기 많이 다녔거든요. 그러면서도 그 생각은 끊임없이 놓치질 않았어. 어떻게 하면 이걸 해낼까 생각하다보니까 저한테 딱 그런 타이밍, 기회가 주어지더라고요.

진짜 그때 안했으면 영원히 못했어요 영원히. 할 수가 없었어. 결과가 뭐겠어요 이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피해. 계속 싸우지 않겠어요. 이게 인간관계 다치는 것만큼 불행한 일이 어딨겠습니까. 지나고보니까 하여간 그런 다른 어느 마을도 경험하지 못한 거를 경험했지. 그래서 아, 인간관계성이라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게 느끼게 되었고. 모든 일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세상 일이라는게 양면이 다 존재하는 거니까. 나쁜일이 있었지만 또 그 가운데에서 또 다른 좋은 점은 이런걸 슬기롭게 극복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어떤 분쟁이 생기거나 했을 때 왜 양보해야하는가에 대한 교훈을 체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죠. 그런거는 또 긍정적인 면이고. 

그래서 우리가 금년이 마을 통합 20주년 기념식을 7월 17일날 합니다. 조촐하게 위에 2층회의실에서 대표들만 모아놓고 할 계획인데. 그런 역사적인 이지역주민들만이 느끼는 사건이 있었죠. 그래서 이제는 화해하고 하나가 돼서 그런 경제적, 공동체적 이익을 가져오는 거지. 우선은 갈등하지 아니하니까. 그렇게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쨌든 벌써 20년이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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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게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여기로 오세요. 마을공동체로 이것도 하나의 행정이니까. 가장 가까운데가 리사무소. 여기와서 문제를 고라야지. 여기가 다 연결된 곳이기 때문에 통하잖아요. 이런문제가 제기 됐으니 재발하지 아니하고 잘 하도록 김녕리사무소를 많이 이용해주셨으면 좋겠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여기 오는 분들이 뭘 잘 몰라. 이런 문제점을 물어볼 데도 잘 없어. 그런 것들을 가감없이 가장 빨리 접하고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리사무실이에요. 그 민원인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곳이 존재하는 거지 그게 아니면 여기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친절할 것. 민원창구에서 일하는 사람은 여기는 그게 전부다. 무슨 책임자 역할? 아니다, 봉사하는 자리다. 민원인이 왔을 때 해결이 안되면 책임자에게로 오고, 해결안되는 거는 시청으로 연결하고. 그분이 아무래도 시민이주인이다 이런게 다 허황된 표나 얻기 위한 거였다고 생각했는데 리사무소가니까 내가 진짜 마을 주인이라는 느낌을 받는 거죠. 사람은 감정이기 때문에 아주 작은 것에서 출발이라고 생각해요.